항아리 두껑에 나옵니다. '항아리 보쌈'



  오늘은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보쌈을 먹으러 갔습니다.
  (왜 인지 저는 어머니를 먼저 말하고 아버지를 말하는 버릇이 있군요. 어머니, 아버지.. 왠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들 그러신가요?)
  요즘이야 외식하는 것이 별스럽지 않은 일이 되고 말았지만,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하더라도 '외식'이란 것은 참 대단한 가족행사였습니다.

  아무튼, 우리 집은 본래 작은 것들에 집착하지는 않는 내력이 있는 집안이어서 오늘도 딱히 메뉴를 정하고 나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지나가다가 '어, 보쌈 먹을까?', '그러지 뭐.'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어머니와 저 때문에 다수결에서 밀리신 아버지가 그냥 차를 대게 되었던 것이죠.

  여튼, 오늘 갔던 곳은 '항아리 보쌈'이라고 하는 좀 덜 유명한 보쌈 체인점이었습니다. 왜 항아리 보쌈인가 궁금했는데, 알고 봤더니, 보시는 사진 처럼 정말 항아리 뚜껑에 보쌈을 담아 주는 곳이더군요.ㅎㅎ

  항아리 안에다 재워서 보관하는 것도 아니구, 그냥 항아리에 내어주는 것을 가지고 특별하다고 말하기는 뭣하지만, 주변에 따라나오는 옹기들과 항아리.. 좀 무겁긴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식기류라 나름 맛있게 먹었습니다.

  아..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이것은 아니었는데요.
  그렇게 맛있게 보쌈을 먹다가 문득 대학교 때 즐겨먹던 보쌈이 생각났습니다. 사실 저는 군대에 다녀오기 전까지는 입이 짧은 편이어서 고기류는 딱히 즐겨 먹는 타입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껏 고기류는 살코기만 발라먹는 아주 유아적인 식습관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런데 왠일인지 군대에 입대했더니 집에서 큼지막하게 구워주시던 고기가 무척이나 먹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휴가를 나와서 집에서 구워주시는 고기를 살코기고 비계고 가릴 것 없이 마구 집어 먹었드랬는데, 그게 정말 맛있었고, 그 다음부터는 아무 것이나 잘 먹게 되었드랬죠.

  하지만, 밥그릇까지도 다 씹어먹을 만큼 식성이 극성 맞던 대학교 시절에는 1인분에 몇 천원씩 하는 고기를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모임에서 고기집을 가도 최대한 싸고 양 많은 곳을 찾아가는 시절이었죠. 그래서 먹는 고기는 언제나 질이 낮은 냉동육이 주류였던 것 같습니다. 허나, 그것도 없어서 못먹었었지요.

  사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그 시절에는 밥 보다는 술이, 질보다는 양이 중시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아침은 숙취로 인하여 거르고, 점심은 학교 식당에서 저녁은 술과 함께 라면으로 때우거나, 안주로 때우거나, 가끔 밥을 차려 먹는다고 해도 그저그런 인스턴트 식품들로 때우기가 일수였지요. 그러다가 감기라도 걸려 몸이라도 아플라치면 왠지 고기라도 먹어주어야 힘이 날 것 같은 기분에 고기집을 찾고는 했었습니다.

  그런 때 찾아가던 집이 바로 학교 근처에 있던 보쌈전문점이었습니다.
  그 집은 정확히 말해서 '보쌈백반'이라고 해야 어울릴, 반찬과 된장찌게 그리고 보쌈고기가 몇 점 나오는 '보쌈정식'이라는 메뉴가 1인분에 5,000원이었습니다.
  지금도 보쌈집에 혼자 들어가서 보쌈을 시켜먹는 다는 것은 좀 이상하다고 느껴질 것입니다. 대부분 보쌈이 1인분, 2인분의 개념 보다는 대, 중, 소로 나뉘어 놓고 소짜리가 2인분 정도 되게 팔고 있으니까요. 허나 그집은 '보쌈정식' 이라는 1인분 메뉴를 만들어 팔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집에 자주 갈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 집을 처음 발견한 건 제가 아니었습니다.
  그 때 사귀고 있던 여자친구가 힘내라면서 데리고 가주었던 곳이지요.
  여자친구는 4학년, 임용고시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던 때였고,
  저는 복학생 3학년, 사회에 적응하느라 어리버리 하던 때였습니다.
  기숙사에 살던 그녀가 자취를 하는 저에게 제대로 된 밥이라도 먹으라면서 데리고 가주었던 곳이었습니다. 어떻게 맛이 없을 수 있겠어요.
  그 때 그시절의 보쌈이 갑자기 문득 떠올랐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 여자 친구와는 먹을 것에 대한 기억이 많군요.
  제가 전날 친구들과 술을 먹고 집에서 뒹굴거리고 있을 때면,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점심시간에 맞추어 찾아와서 점심이나 먹자며 데리고 가던 해장국집도 참 맛있었습니다.
  그녀의 생일날 우연히 '꽃게탕'이 먹고 싶다던 이야기가 떠올라 '해물탕'집을 찾아 헤메던 기억도 있구요.
  당시엔 도깨비방망이 라고 불리웠던, 길거리에서 팔던 '고구마핫도그'를 먹다가 싸웠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비쩍 말랐는데도 식탐이 많던 친구여서 만날 만나면 뭐 먹을까 고민을 하던 시절이었는데,
  우스겟소리로 '우리는 엥겔지수가 너무 높은 커플이야' 라면서 웃고는 했었습니다.

  아무튼, 이제 다음주부터 그런 추억들이 있는 학교로 일주일에 한 번씩 내려가야 하는데요.
  사실, 10년도 넘은 일이라 많이 변해버렸겠지만, 추억은 남아 있는 거니까요.
  기회가 된다면 그 시절 그 맛을 한 번쯤 다시 경험해봤으면 좋겠네요.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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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차이와결여 2009/02/28 23:3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아.. 그리고 저는 지금. '사케'가 무지 먹고 싶네요.
    '정종', '사케' 안주는 평범하게 '오뎅'을 놓구요.
    '도쿠리' 한 병을 먹고 잠들면 진짜 행복할 것 같아요.

  2. 클라리사 2009/03/01 17:1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사진 보고 눈 버렸음...책임지삼...

    오이피클을 김치 대용품으로 산 지 수개월째...
    저도 잘 가던 보쌈집 있어욧! 거긴 다 먹고 나면 주는 우거지 된장이 정말 죽음이었어욧!
    사진 한 장이 주는 이 공감각이라니. 울고 싶은 심정입니다.

    • 차이와결여 2009/03/01 20:38  address  modify / delete

      ㅎㅎㅎ

      이런 반응이 있을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요. 외려 사진이 너무 커서 맛없어 보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했었는데, 외려 미감을 풍부하게 자극만 했군요...

      가득이나 이것저것 먹고 싶은 것도 많으실텐데 죄송합니다. ^^;;
      그래도.. 우거지 된장이라뇨.. 저도 입 안에 군침이 도네요. ^^

  3. herenow 2009/03/01 19:4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저도 클라리사님과 동감이에요.
    아, 저녁도 못 먹어 허기진 참에 저 사진이라니.
    아....우거지 된장!!!

    부산오뎅집에서 오뎅꼬치 먹으면서 마시는 뜨뜻한 오뎅 국물.
    흑. 괴롭습니다!!!

    • 차이와결여 2009/03/01 20:41  address  modify / delete

      얼른요.. 얼른 저녁지어 드세요. ^^;;

      어제 저는 결국 오뎅과 사케를 생각만 하고 잠이 들었어요. 꿈 속에서라도 먹어보려 했지만, 꿈이란게 항상 맘 먹은대로 되지는 않더군요..

      흑.. 부산오뎅집에서 먹는 뜨뜻한 오뎅 국물.. 생각만해도 속이 다 풀리는 것 같네요..

      담에 들어오시면 사드리진 못하더라도 꼭 찾아드시길.. ^^

      오뎅은 뭐니뭐니 해도 겨울이 최고죠. 그쵸?

  4. 실버제로 2009/03/02 20:4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완전괴로워진다는...ㅠㅠ
    어떤 고마운분이 초대해주셔서 저번주에 보쌈을 먹었는데 또다시 보니 또 먹고싶네요.ㅋ

    역시 먹을것이 한국사람에겐 제일 중요한거 같아요.ㅋ
    이상하게 (혹은 그사람들이 보기에 우리가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밥먹으면서 또 먹을거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밖에 없는거 같더라고요...ㅋ

    아... 부산 남포동에 작고 허름하고 유명한 오뎅집있는데 거기가 갑자기 가고 싶어지는군요.ㅠㅠ

    • 차이와결여 2009/03/03 11:23  address  modify / delete

      아.. 저는 맛집탐방.. 같은 카테고리는 만들면 안되겠습니다.

      해외에 계신 분들이 고정 방문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계신 것만 같아요 히히..

      그래도, 종종, 철에 따른 먹거리를 올려보도록 하지요..

      부산 남포동에 허름한 오뎅집은 말만 들어도 가보고 싶어 지는데요??

      정말 먹고싶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