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 티저 포스터
난 지금 매우 불편하다.
이 불편한 마음은 내가 <워낭소리>를 보고온 1월 15일에는 없었던 감정이다.
개봉 몇 일전, 영화에 대한 소식을 처음 접했고, 단순히 몇 개의 정보와 거칠은 두 손이 곱게 모아져 있는 포스터를 보고나서 필견하여야할 영화로 점찍은 뒤, 개봉하자마자 득달같이 달려가서 직접관람을 했을 땐, 사실 그저 기쁘기만 했다.
HD 카메라로 촬영됐다는 유려한 화면도 좋았고, 그 유려한 화면에 담겨진, 우리 나라의 평범한 산하의 모습도 좋았고, 그 곳에서 묵묵히 옛날의 방식대로 살아가시는 두 분 어르신들의 모습도 모두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굵은 눈물을 뚝뚝 떨구며, 희생적인 자세로 생의 마지막까지 묵묵히 자신의 일에 열중하던 '소' 역시도..
영화를 보고 나서, 조금은 과장을 하더라도 감동적인 리뷰를 작성하자고 마음 먹었다.
물론, 내 글발로는 아무리 노력해봐야 그만그만한 글들을 써제낄 뿐이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알리고, 또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는데 작은 힘이라도 된다면.. 하는 작지만 커다란 바람을 담아서 리뷰를 써야 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막상 컴 앞에 앉으니, 머리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고, 그저 영화에서 배운대로 솔직하고 꾸밈없게 리뷰를 작성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렇게 썼다.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매스컴을 비롯한, 각종 매체들에서 <워낭소리>에 대한 이야기들이 기사화 되었고, 조금씩 이슈가 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삼일절을 맞아 '워낭소리'가 200만 돌파의 기록을 작성할 것이라는 기사
'이충렬' 감독은 인터뷰를 할 때면 언제나, '아버지를 떠올리면서 만들었다.', '예전의 삶과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담아낼려고 노력했다.' 등의 인터뷰를 남겼는데, 그렇다면 우리들은 그런 감독의 진심에 갑작스레 공감이라도 하게 된 것일까? 발전의 속도가 나날이 빨라져만 가는 고도화 사회에서 느리게 흘러간다는 것의 미학에 갑자기 경도되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영화의 흥행에는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 하지만 뭐 나쁘지않았다.
'내가 바라던 바가 아니던가? 나역시도 주변 사람들에게 보라면서 추천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워낭소리>의 흥행은 이전의 독립영화들의 흥행방식과 전혀 다른 양상을 띄기 시작했다.
영화의 배급에 대형 배급사들이 붙었고, 그 배급사에 딸려있는 멀티플렉스들에선 하나 둘씩 상영관을 늘려가기 시작했으며,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비롯한 각종 매체들에선 연일 <워낭소리>에 대한 이야기들을 빠지지 않고 언급됐다. 굳이 비교하자면 이 때까지의 독립영화들의 흥행방식은 좀더 조용한 방식이었다. 아무리 흥행에 성공을 한다고 해봐야 기껏 10만 정도의 수준이었고, 개봉관은 여전히 턱없이 적었으며, 대개는 '공동체 상영' 등과 같은 말 그대로 발로 뛰는 방식의 방식이 었지,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그런 방법은 아니었다.
그때 부터 이 영화 <워낭소리>는 더이상 '독립영화'가 아니었다
언제나, 밝은 곳에는 어두운 이면이 존재하는 법.
역시나 <워낭소리>에 대한 안좋은 뉴스들이 나오시 시작했다. '이충렬' 감독은 새해를 맞이 인사를 드리러 찾아간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꾸중을 듣고 외면을 받았으며, 결국엔 홈페이지를 통하여 호소문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야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또 그 이야기를 가져다가 뉴스를 만들어냈다. 허나, 그런 소식은 <워낭소리>를 더욱 이슈화할 뿐이었다. 이제 영화는 '독립영화'에서, '상업영화'로의 변신을 넘어서 '국민영화'로까지 발전하기에 이른다. 영화를 보지 않으면 우리 나라 사람이 아니요. 그 영화도 안 봤다하면 마치 시대의 이슈에 무관심한 사람으로 취급당할 형편이다. 어느덧 관객은 100만을 넘어섰고, 많은 영화들을 제치고 1일 관객수 1위라는 기염을 토한다.
영화의 주 촬영지 였던 경상북도에서는 영화 촬영지를 관광상품으로 개발한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하지만, 나는 이 시점에서 <맨발의 기봉이>의 주인공 '엄기봉'씨와 영화 <집으로>의 주인공 '김을분' 할머니가 떠오른다. '엄기봉'씨는 여러가지 주위의 협박과 간섭으로 인해 고향을 떠났다가 얼마 전에 겨우 고향으로 돌아왔다. '김을분' 할머니는 결국 평생 동안 사시던 고향을 등졌다.
'백상예술대상'에서 신인감독상을 받은 '이충렬' 감독
왜 이런 일들이 발생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 영화에 나오는 산과 들, 그리고 사람들은 어디 다른 나라, 다른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차를 타고 한 시간만 도시를 빠져나가면 흔히 마주칠 수 있는 그 산과 들, 그 어르신들이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아닌가? 왜 우리는 굳이 그 분들의 삶을 흔들면서까지 마치 <겨울연가>에서 나왔던 '춘천'의 명동을 해매기위해 비행기를 타고 오는 '일본인 관광객'들 처럼 그 곳을 방문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 분들은 배우들도 아니었다. 연기를 하지도 않았다. 그냥 평범하게 살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살았고, 감독은 그 장면을 촬영하여 매끄럽도록 편집을 했을 뿐이다. 우리는 그런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았던 것이고, 그렇다면, 그 영화의 진실에 조금이라도 가까워 진다면, 우리가 돌아봐야 할 것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삶이 아니라, 경북 봉화가 아니라, 바로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이고, 내가 살아온 길이어야 함이 옳다.
좀더 나아가서 생각해본다면,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은 우리 나라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야 옳다고 본다. <워낭소리>를 보고 감동을 받은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꼭 유명한 배우가 나오지 않아도, 거대한 자본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가슴을 울릴 수 있는 영화가 만들어 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이때까지는 보지 않았던 작은 영화들에 응원을 보내주고, 독립영화들을 후원해주는 모임을 만들고, 또다시 제2의 <워낭소리>가 나올 수 있도록, 그래서 우리의 기대가 충족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데 써야 함이 옳다.
하지만, 오늘의 이 상황은 다만 <워낭소리>라는 한 작품을 특수하게 만들 뿐, 제2의 <워낭소리>는커녕 더이상의 독립영화들이 제작될 환경까지도 파괴하고 말 것만 같은 불길한 생각마저 들게 한다.
오늘도, 여기 저기에는 <워낭소리>에 대한 기사들이 새롭게 올라오고 있다.
'이충렬' 감독은 '백상예술대상'에서 상을 받으며, '맘이 편치 만은 않다' 라고 말했고, '고영재' PD는 '그 분들의 삶에 작은 피해라도 생긴다면 당장이라도 영화를 내리고 싶다'라고 까지 말한다.
나 역시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자 리뷰를 작성했던 사람으로서 불편한 마음이 한 가득이다.
왜, 우리는 이토록 가벼울 수밖에 없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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