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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긴 만남> 겉 표지

* 아주 사적인, 긴 만남
* 루시드 폴, 마종기 , 웅진 지식하우스


  방학이 되어서 마음이 여유로워진 탓인지 행동까지 여유로워졌나 봅니다.
  벌써 일치감치 끝냈어야 할, 1학기 성적표 가정통신문을 방금 막 끝냈습니다.
  어차피 내일 발송하는 것이니까 늦은 것은 아닌데요. 그래도 벌써 끝낼 수도 있었는데, 하기 싫다고 미루고 미루다가 오늘에서야 끝내게 되었네요.
  오늘 보충수업이 끝났고, 내일은 학교에 잠깐 나가서 남은 몇 가지 일들을 마무리하고, 성적표를 담아서 제출하고 나면 정말 1학기가 끝나고 실질적인 방학이 됩니다.
  개학이 19일이니까 약 보름 정도의 시간이 남는 거네요. 길지는 않지만 7년 간의 교직생활 중, 가장 긴 여름방학을 맞이하는 것 같습니다. 남은 보름을 참으로 알차게 써야 할 터인데, 지금 드는 생각은 한 3일 간 집에서 푹 쉬면서 뒹굴뒹굴 읽고 싶은 책이나 실컷 읽고 싶은 마음입니다. 하지만, 금요일날도, 토요일날도 약속이 잡혀 있습니다.
  아무래도 학기 중에는 주중엔 야자로 주말엔 대학원으로 꼼짝도 못하는 상황이라, 다들 제 눈치만 보면서 약속을 미뤄주는 터라 어쩔 수 없이 방학에는 만남이 몰려있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지지난 주에도 작년 1급 정교사 연수 때 같이 공부했던 선생님들을 만났고, 또 얼마 후엔 대학 동기들과 늦은 생일파티를 했고, 그 다음 날엔 졸업생 'hyun'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회사다닐 때, 정말 친하게 지냈던 동생을 만나서 그간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친한 지인들을 만난다는 것은 참 정겨운 일이긴 합니다.
  서로 얼마 간 지난 일들을 공유하고, 또 안부를 묻고, 생각하고 있는 작은 소망들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조언도 듣고요. 그리고 그러한 시간들을 함께 공유한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시간들이 모여모여 '인연'이라는 말이 된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자리에서 참으로 다양한 표정들을 짓게 됩니다.
   친구들과 만날 때엔, 약간은 긴장이 풀린 모습으로 술도 많이 먹게 되고, 좀 터무니 없는 허풍을 떨어보기도 하지요. 어차피 녀석들과는 이미 많은 일들을 공유하고 있기에 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흉이 될 것도 아니니 잔뜩 나사를 조이고 긴장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런 날은 말도 많이 합니다.
  그런 반면, 격식을 갖춰야 할 자리에서는 주로 듣는 편에 속합니다. 내 의견을 피력하기 보다는 주로 동조하는 편이 편합니다. 왠지 그런 자리에서는 말을 아껴서 생각이 많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데, 그 이유는 상대방에게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학생들이나 졸업생들을 만나면, 좀 나이에 맞지 않게 개구장이가 됩니다. 일단은 학교 다닐 적부터 이야기하기 편한 선생님으로 낙인 찍혀있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다보면 요새 흔히 쓰는 유행어들도 '레알' 날릴 수 있어야 하고, '님 쫌 짱인듯'한 분위기를 풍겨야 아이들이 어색하거나 예의를 갖추려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쉽게 자신의 속에 있는 말들을 하기도 하고, 그럼 다시 진지 모드로 변해서 선생답게 조언을 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결국은 조언자의 입장에서 말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면, 정말 내 모습은 어떤 것인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때론, 몇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엔  말을 하는 편이었던지, 듣는 편이었던지에 상관 없이 허탈해지기도 합니다.
   왠지, 수없이 많은 말들을 쏟아놓고,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중에 필요한 이야기는 거의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만남이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오래간만에 만난 만남에서는 서로의 안부나 상황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룰 수밖에 없고, 갑자기 만난 사이에 심각하게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낼 수도 없는 것은 당연지사니까요.
  하지만, 한 편으론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드는 적이 많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요 며칠 집중적으로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많은 분들이 권해주셨던 '루시드폴, 마종기'<아주 사적인, 긴 만남>을 읽게 되었는데요. 참으로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어쩌면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한 형태를 만난 것 같기도합니다.

  두 사람은 처음엔 서로의 팬으로서 조심스럽게 대화를 시작합니다. 보통의 이야기들의 시작과 같이 처음엔 자신의 주변에 대한 소개로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상대방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을 첨가해가면서 서서히 자신의 모습을 열어 상대방에게 다가갑니다. 그 가운데 조금씩 말투가 달라지기도 하고, 서로를 대하는 태도도 유연해지지요. 그리고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마치 조언을 구하듯 툭 던져 놓으면 역시 받는 쪽에서도 심각하진 않지만 신중하게 답변을 내어놓습니다.
  저는 두 사람의 편지글을 번갈아 읽으면서 때론 '루시드 폴'이 되기도 하고, 때론 '마종기'시인이 되기도 하면서 읽었습니다. 하나의 글을 읽고 나라면 어떻게 답할지 생각해본다음 그 다음의 편지를 읽기도 하였습니다. 때로는 내 생각과 일치하기도 했고 다르기도 했지만, 그렇게 글을 따라 읽으면서 깨달은 것은 진솔한 마음과 세심한 배려와 존중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상대방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는 고려하지 않고 서로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그걸 받아서 이야기해주는 사람도 말로는 하지 않지만 혹시 오해하지 않을까 조심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하더군요. 그리고 모든 대화는 상대방에 대해 존중을 표시하며 애정을 드러내는 모습으로 끝맺음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나이차 따위는 전혀 고려할 수 없는 진솔함이 깃든 대화, 솔직함, 배려.
  이러한 진솔함과 솔직함과 배려를 '적당한 거리'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적당한 거리'가 있는 대화.
  실로, 해보고 싶은 대화였습니다.
  실로, 부러운 두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두 사람은 많은 부분의 삶이 비슷하기도 하고, 국외자로 있는 상황 또한 같기 때문에 공유하거나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하지만, 무엇하나 자신의 이야기를 주장하거나 관철하려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상대를 향하여 열려 있는 태도는 배워야 할 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사람의 그렇게 '적당한 거리'가 있는 대화가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대화가 아닐까 합니다.
  열려 있으되, 흡수하려 하지 않는 대화.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일까요 어려운 일일까요?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쉬운 일일까요 어려운 일일까요?
  요즘 제가 찾고 있는 것이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덧붙임 : 아마도 이런 탓인지도 몰라도,
             <우렐렐라 피크닉>, <베란다 프로젝트>, <에피톤 프로젝트> 등 보고싶은 다양한 콘서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루시드 폴 : 목소리와 기타> 공연을 예매하고 말았습니다. 아직 멀었는데, 벌써부터 설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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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실버제로 2010/08/05 07:5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베란다 프로젝트도 콘서트를 하는군요! ㅠㅠ

    어려운 일이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닌것 같아요.^^
    한국에서든 외국에서든 점차 어려운일이 되어가는 것 같긴 하지만요.

    • 차이와결여 2010/08/05 09:51  address  modify / delete

      네,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3일간 하는데, 벌써 좋은 자리는 매진이더라구요.
      역시 동률옹의 티켓파워는 대단하다능...^^

      어려운 일이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ㅎㅎ
      불가능에 가까운 일에 도전하는 '차이와 결여'입니다. ㅋㅋ

      Impossible is nothing!!

  2. clovis 2010/08/05 20:19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적당한 거리'가 있는 대화... 저도 한번 도전해봐야겠습니다.

    드래곤라자 읽어보셨어요? 거기에 나오는 말이 갑자기 생각나서 써봅니다.
    '나는 단수가 아니다.'

    ㅎㅎㅎ드디어 갤럭시S샀습니다

    • 차이와결여 2010/08/05 21:04  address  modify / delete

      그쵸? 한 번쯤 해보고 싶습니다.
      드래곤라자는 제 동생이 좋아하던 책이었는데, 그런 말이 있었군요...

      멋있네요. '나는 단수가 아니다.' ㅎㅎ

      스마트폰유저가 된 것을 축하드려요.. 난 언제 넘어가나..^^

  3. 비밀방문자 2010/08/05 23:5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차이와결여 2010/08/06 09:22  address  modify / delete

      여긴 미성년자 출입금진데.. ㅡㅡ;;

      여튼 어려운 걸음을 하셨으니 환영해드림..ㅋㅋ

      아마도 이게 내 진짜 모습이고 니들이 아는 모습이 연기일 가능성이 200%임. ㅋㅋ

  4. 클라리사 2010/08/06 04:3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두 남자가 나누는 속삭속삭, 좀 간지럽진 않은가요?
    그럴 것 같아서 아직 안 봤어요. 시도 노래도 좋아하지만...

    '진솔함이 깃든 대화',
    오래전 이야기 같이 들려 좀 서글퍼지네요.

    • 차이와결여 2010/08/06 09:25  address  modify / delete

      아무래도 평범치는 않죠.. ㅎㅎ

      그런데 워낙에 감수성이 뛰어나신 분들이라 그 간질간질 마저도 좋게만 보이더라구요 ^^

      어쩌면 블로그를 하시는 분들이 모두 그런 진솔한 대화를 그리워하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감히...해봤답니다..

      다른 분들은 몰라도 저는 분명 그런듯해요. ^^
      (여자친구가 생기면 블로그도 안할라나?? ㅎ)

  5. 비밀방문자 2010/08/07 00:0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6. 실버제로 2010/08/09 09:4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타인이 홈페이지를 통해 느끼는 인상은 자신이 보이고자 하는 모습보다 실제 자신의 모습과 압도적으로 일치한다. 혹시 자신을 보다 긍정적인 모습으로 보이기 위해 홈페이지를 꾸미더라도 그것은 실패한 것이다. 홈페이지로 전해지는 인상은 무척 정확하다
    - 샘 고슬링, 텍사스 대학 심리학과-

    아는 언니가 페이스북에 이런걸 써놨더라고요. ^^; 홈페이지로 전해지는 인상이 정확하다는게 무섭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해요!

    • 카르페디엠 2010/08/09 14:21  address  modify / delete

      고슬고슬 아저씨의 말에 저도 찬성이예요.
      블로그나 트윗, 홈페이지들이 자신의 본질과는 다른
      가식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하더라도,보는 눈이 열려있다면 그 본질을 금새 파악할 수 있죠.
      한마디로 사람은 그 '본성'을 숨길 수가 없는 법인가봐요.

    • 차이와결여 2010/08/10 11:19  address  modify / delete

      '실버제로'님이 트위터에 쓰신 것 보고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저의 경우에는 좀 예외인 듯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제가 바라는 제 모습으로 꾸미려는 경우가 많은 것 같기는 하지만, 또 모르죠. 은연 중에 제가 알지 못하는 저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

      그런데, '카르페디엠'님도 공감하신다니 아마도 맞는 이야기겠죠...
      보여지는 모습과 제 본래의 모습이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

    • 실버제로 2010/08/10 13:25  address  modify / delete

      숨기려해도 숨길수없는것들이 있는거겠죠?^^;
      잘은 모르겠지만 학교에서의 모습도, 여기에서의 모습도 다 차이와결여님의 모습이 아닐까 싶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