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의 생명>
슬픔이여 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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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소아 사강의 책 <슬픔이여, 안녕>에 실려 있는 폴 엘뤼아르의 시.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서 라도
솔직한 욕망의 모습을 드러내는
‘욕정을 부채질하는 육체들의 사랑
사랑의 힘.
몸뚱이가 없는 괴물마냥
유혹이 솟아난다.’
라는 원색적인 구절과
“슬픔이여 잘가
슬픔이여 안녕”
이라고 청명한 소리로 또랑또랑하고 말하고 뒤돌아 걸어가는
아직 채 유년기의 모습을 벗지 못한,
당찬 아가씨의 뒷모습이 느껴져서 좋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의 옆 모습, 뒷모습이 좋아지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그윽히 바라볼 누군가가 없어서 왜 좋은 건지 이유를 생각해볼 순 없었다, 하지만
먼 기억 속에,
사랑했던 그녀가 긴 스커트의 자락을 팔랑팔랑 날리면서 걸어 가는 뒷모습과 그 이미지를 아직도 기억하는데,
그 때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분명이 그의 걸음걸이에서는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그런 느낌의 시다.
“슬픔이여 안녕~”
어제 서가 정리 중 발견한 ‘사강’의 책을 떠들러보다 꽂힌 시.
폴 엘뤼아르 (Paul Eluard)

출 생 : 1895년 12월 14일
사 망 : 1952년 11월 18일
출신지 : 프랑스
직 업 : 시인
경 력 :
1942년 공산당 가입
1940년~1944년 작가 국민위원회 북부책임자
대표작 :
이곳에 살기 위하여, 사랑이란 의미를 알기에 멀리서만 당신을 바라보았습니다
멋지십니다. ‘rainforest’님..
저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었는데,
이렇게 원문으로 보고 제대로된 의미를 알게되니까 훨씬 새롭군요..
제가 받아 들였던, ‘작별인사’와 ‘rainforest’님께서 말씀해주신 ‘만남의 인사’…
화자의 태도가 당차고, 사랑스럽다는 측면에서는 일치하지만,
속 뜻은 전혀다르네요.
‘만남의 인사’ 쪽의 의미가 훨씬 강하게 와닿고 좋은데요??
정말 감사합니다. 여태껏 잘못 알고 있었던 사실을 깨우쳐주셔서요..
이렇게 참뜻을 알고 나니,
‘프랑소와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도 다시 읽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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