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불제 민주주의>

<후불제 민주주의> 앞 표지



* 후불제 민주주의
* 유시민, 돌베게

  참으로 오래간만에 올리는 독서후기입니다.

  그리고 또 참으로 오래간만에 읽어본 '유시민'의 책이지요.
  지난 날 다독은 아니었던 독서 습관 때문에 '유시민'의 책은 <거꾸로 읽는 세계사>가 전부 입니다. 그것도 대학시절에요.

  여튼, '유시민'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이 있지도 않았고, 책도 그저 그러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었는데,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노 전대통령의 동반자이자, 정치적 서자라고도 불리워지는 '유시민'의 생각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졌던 차에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후불제 민주주의'라는 다분히 자극적인 제목 안에 그가 도대체 어떤 생각들을 담아 냈을까 궁금하던 찰나, 바쁜 일이 생겨서 책을 떠들러보지는 못하고 부록으로 딸려있는 출간 기념 저자 강연 CD를 먼저 보았습니다.

  책이 출간 된 것은 3월.
  아직까지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조사가 진행되는 상황이었고, 어느 정도의 정치적 식견을 갖춘 사람들이라면 예상 할 수 있는 일들이었지만, 마치 이미 어느 정도의 사태까지는 예견한 듯 시민들의 힘과 연대를 역설하는 그의 강연에 조금은 호감을 가지고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저자도 밝혔듯, 전문가에 의해서 쓰여진, 전문적 법학 서적은 아닙니다. 한 때는 정치인이었고, 한 때는 운동권 대학생이었으며, 지금은 자칭 지식소매상으로 혹은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교수로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인류문화 발전의 가장 윗단계에 해당하는 '헌법'의 조항들을 가볍게 해석하면서 우리가 간과하고 지나간 많은 권리들.
  그로 인해 나타나는 권력의 포악성, 그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조금은 무거운 헌법에세이 정도의 글입니다.

  제가 이 책을 좋게 평가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은 첫 장 '행복'에 실려있는 다음과 같은 글 때문입니다.


  나는 왜 태어났고 무엇을 위해 사는가?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인생인가? 혹시 내가 그 어떤 목적에 쓰이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그 목적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하기야 그 나이에 이런 '실존적 고민'을 토로했다면 철이 덜 난 사람 취급을 받았을지 모른다. ... 그런데 또 많은 사람들이 그런 물음 자체를 잊어버린 채 오늘을 살아간다.(중략)

  인생의 목표 또는 삶의 목적에 대해 사람마다 다른 대답을 내놓을 것이다. 억만장자와 가난한 청년의 대답이 같기는 어렵다. 무신론자와 성직자, 철학자와 생물학자, 대기업 경영자와 노동자의 대답도 서로 다를 것이며,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상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다른 무엇보다도 더 깊이 내 마음에 와 닿는 소리를 찾았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중략)

  나는 오늘 하루도 행복하려고 노력한다. 오늘보다 내일 더 행복해지려고 무엇인가 준비한다. 한번 흘러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행복은 오늘을 희생해서 얻을 수 있는 그 무엇이라기보다는, 오늘 다음에 내일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행복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서 나온다.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소식들이 사방에서 들린다 해도, 지금 이 시각 누릴 수 있는 기쁨과 행복을, 내일 누릴 행복을 준비하는 것을 그 때문에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나지 않았다. 어떤 초월적 존재가 자기의 뜻을 드러낼 수단으로 창조한 피조물도 아니다. 국가와 민족의 영광을 위해 희생되어 마땅한 존재 역시 아니다. 우리 모두는 행복을 누릴 권리를 지니고 세상에 온, 스스로 귀한 존재들이다.

(p.29~35)



  다소 내용이 길어졌지만, 이야기 자체가 빼놓을 부분 없이 모두 공감을 했던 터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제가 위 구절을 읽으면서 기뻤던 것은 저와 똑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살아오면서 우리는 차츰 우리가 무엇때문에 이 땅에 태어났고,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지에 대한 생각을 잊고 살아갑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목표를 위해, 자아 발견을 위해.. 이런 말들은 너무나 범위가 넓고 추상적이고,
  돈, 지위, 좋은 배우자, 좋은 직장... 이런 말들은 너무나 통속적이어서 인정하기가 싫습니다.

  그런데, 그 보다 더 추상적이라 생각했던 '행복'이라는 말을 그 논리적이고 명료하다는 '법', 그 중에도 가장 높은 법이라는 '헌법'에 명시해놓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헌법'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역으로 말해, 누구나가 기본적으로 누려야할 권리라는 뜻이기도 하지요. 이른바 '행복추구권'이라는 것 말입니다.

  삶에 대한 여러 가지 명쾌한 해석이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유시민'의 생각을 따라가며 '헌법'안에서 내 삶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체험적으로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첫 장의 '행복' 말고도 '자유', '주권', '진보와 보수', '미네르바', '재산권' 등등 1장에서는 '헌법'에 기초한 인간의 기본적 권리와 그에 대한 생각들을 알기쉽고 이해하기 쉽게 펼쳐내고 있는 이 책은,
  2장의 '권력의 실재'에 가서는 정치인 '유시민'으로서의 지난 삶과 권력에 대한 생각들을 이야기 합니다.
  나름 권력의 중심부에 서 있었던 사람이 당시 자신이 속했었던 정부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만, 지난 참여정부 때, 최전방에서 비난을 받았던 정치인인 그가 정치를 떠나와서 한사람의 글쟁이로서 글을 통하여 자신을 변호한다는 것이 그렇게 밉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해서, 2부는 많은 부분이 참여정부에 대한 변호와 자신이 겪었던 소회를 풀어내고는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 안에 자신이 생각하는 권력과 정치라는 것을 풀어내고 있어서 이쁘게 봐주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최소한의 상식 선에서 지켜져야 할 것과 지켜내야 할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머리 아프지 않게 우리가 가진 기본적인 권리들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튼, 어찌하다보니 다분히 사회비판적인 책으로 본격적인 독서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만, 시절이 시절이다 보니 누구나 사회적인 인간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집에 있는 책들도 많이 있고, 보아야 할 것도 많은데, 오늘 새로 주문한 책들 중에 <100℃>라는 '최규석'의 만화 마저도 '6월항쟁'을 다루고 있네요.

  여하간, 정리하자면
  참여정부가 어떤 정부였는지, 혹은 '유시민'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궁금하시거나, 우리가 왜 이런 사회를 맞이하고 있는지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한 번쯤 일독을 권장할 만한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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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카르페 디엠 2009/07/01 12:5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법의 대부분이 '상식'으로 이루어져 있다고하죠
    그래서 '상식이 없는 사람'이 법을 다루면 안되는 거라고 하더군요
    누가 다루느냐에 따라 적용이 달라지니, 법이란게 살아움직이는 생명체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머리 아프지 않은 책인 건 확실한가요?
    전 머리 아픈 책은 딱 질색이랍니다~
    머리 아프고 딱딱한 책은 돌베개와 다름 없지요^^

    • 차이와결여 2009/07/01 16:07  address  modify / delete

      머리 아프진 않더라구요. 그냥 가벼운 에세이 정도요 ^^

      아. 평소 법이 너무나 어렵게만 생각되서 멀리했었는데, 법이란 '상식'의 집대성이군요...

      많은 사람들이 법을 상식처럼 가깝게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

  2. INNYS™ 2009/07/12 01:2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저도..열심히 읽고 있습니다^^